ps

ps


1

 

 

1956년 10월초 어느날, 기계공업성의 소환을 받은 문상혁은 점심때가 좀 지나 평양역에 도착하였다.

그는 희천공작기계공장의 기술부장이였다.

나이는 서른살, 얼굴이 녀자처럼 곱게 생기고 눈에 영채가 돌았으며 약간 큰키에 몸매는 날씬하게 균형이 잡혀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림시역사의 개찰구를 빠져나오는 형형색색의 사람들속에서 그가 유별나게 눈에 뜨이는 점은 없었다. 누구도 그를 알아보려 하지 않았고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도 없었다. 평범한 려객들중의 한사람이였다. 물론 그의 차림새를 눈여겨보면 머리에 쓰고있는 모자와 몸에 입고있는 봄가을외투, 발에 신은 밤빛구두 그리고 손에 든 작은 려행용가방이 쏘련제라는것을 쉽게 알아볼수 있겠지만 이 시기는 아직 우리 나라 제품들이 흔하지 못해 사람들이 외국에서 흘러든 옷과 신, 일용품들을 많이 쓰던 때여서 별로 이상하게 느껴질것이 없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그가 착용하고 있는 옷이나 신이, 특히 구두가 상당히 헐었다는것을 알아볼수 있을것이다. 사실 그것들은 문상혁이 쏘련에 가서 류학할 때 구해 쓰던것들로 아끼면서 특별히 외출할 때만 입거나 신었고 보통때는 수수한 로동복을 입고있었다.

문상혁은 역사를 나와 역전공지에 서있는 버드나무에 이르러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담배를 피워물었다.

몇년만에 다시 와보는 평양이냐!

그는 모자채양을 이마우로 올려밀고 감회깊은 심정으로 한참 복구건설의 활력으로 숨쉬고있는 수도의 모습을 감상하였다. 역전에서 대동강을 따라 대도로가 곧추 뻗었는데 이 본평양지구에 살림집과 학교를 비롯한 공공건물들이 이미 완공되였거나 지금 한창 벽돌로 축조하고있는것이 눈에 뜨이였다.

빨대들을 얼기설기 맸고 나무층계를 밟으며 로동자들이 붉은 벽돌을 지게로 날라올려 솜씨있게 한장 두장 쌓고있다. 기발들이 가을바람에 나붓기고 따찌까를 밀고 달리는 처녀의 빨간 머리수건도 기발처럼 보였다. 창광산쪽으로도 큰길이 뻗어갔는데 거기서는 다층살림집들을 벽돌로 축조하고있었다. 세멘트와 모래를 실은 화물차들, 전차대신 다니는 쏘련제뻐스와 체스꼬슬로벤스꼬제뻐스들, 삽을 메고 가는 로동자들, 분주스럽게 오가는 시민들, 아직 도시의 모습은 확연하게 나타나지 않았으나 건설의 활기에 넘쳐있는 수도는 움직이고 달리고 들끓으면서 세차게 호흡하는것이였다.

문상혁은 평양과 깊은 인연을 맺고있었다. 룡강의 지주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아버지가 사망한후 젊은 어머니는 아들을 키우면서 머리가 좋다는것을 알게 되자 큰 희망을 걸고 헌신적으로 그를 공부시키였다. 그는 보통학교를 마치자 직업학교인 평양공업학교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그의 평양생활이 시작되였다. 그는 이집저집 부자집들에서 가정교사로 일해주며 고학을 했다. 평양에서의 고학생활은 가난한 학생에게 고달픈것이였으나 그래도 그는 이 도시에 정이 들었다. 종을 땡땡 울리는 전차를 타고 모란봉고개를 넘기도 했고 녀학생들과 어울려 영화관에도 다니고 남포에서 올라온 고기배들이 풍기는 비린내가 떠도는 대동강가를 산보하며 첫사랑의 애틋한 감정도 체험했다.

조국의 광복은 이 가난하나 총명하고 정서적인 학생의 생활을 일변시켰다. 광복의 뜨거운 열파속에서 정치투쟁에 휘말려들었다. 그는 공산당계렬의 학생조직에 망라되여 연설도 하고 시위도 했다. 그후 제1기 류학생으로 쏘련에 가서 우랄공대를 졸업하였다. 조국의 산야가 불에 타고 도시들과 공장들이 무참하게 파괴되고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고있을 때 외국에서 공부하고있던 그는 의분을 참지 못해 학우들과 함께 몇번이고 조국에 나가 전선에서 싸울것을 제기했으나 허락받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승리한후 조국을 복구해야 할 임무가 지워져있었다.

그는 눈물을 삼키며 공부에 열중했다. 조국은 전쟁의 승리가 가까와오자 류학생들과 실습생들을 불렀다.

평양에 도착한 첫 순간 그는 자기의 발자취와 숨결과 추억이 깃들어있는 건물들과 거리들을 볼수 없었다. 허물어져 먼지만 날리는 건물들, 폭탄구뎅이들, 옹기종기 들어앉은 반토굴집, 판자집들, 아, 이것이 나의 사랑하는 도시 평양이란 말인가? 문상혁은 미제원쑤들에 대한 분노로 창백해진 얼굴이 화석처럼 굳어졌다. 이상하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역시 이상하게도 그와는 대조적으로 사나이답게 생긴 억센 성격의 리웅천은 눈물을 쏟으며 흐느껴우는것이였다. 강선제강소에서 생산부장을 하던 리웅천은 조국해방전쟁기간 국방공업부문의 공장에서 일하다가 쏘련에 들어가 얼마간 실습을 하였다. 이때 류학생인 문상혁이와도 알게 되였는데 지금 그와 함께 나오는 길이였다.

《평양이 이렇게 파괴될줄은 몰랐소. 정말 몰랐소! 강선제강소도 다 파괴되였다는데. 아, 막 가슴이 터지는것 같구만. 응?》

리웅천은 분해서 울며 가슴을 쾅쾅 두드리는것이였다. 내성적인 문상혁은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말이 없었다. 그들은 같이 중공업성을 찾아갔고 거기서 제각기 갈라졌다. 리웅천은 강선으로, 문상혁은 희천으로… 그는 희천에 가서 공작기계공장건설에 참가했다.

그때로부터 3년이 지나갔다. 문상혁은 3년만에 평양을 다시 본다. 페허속에 묻혔던 도시가 드디여 새 모습을 드러내기 사작하고있다. 서글프기도 했고 즐겁기도 했던 학생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줄 모습은 사라져버렸지만 평양은 신생의 모습으로 솟아오르고있지 않는가.

젊음과 힘, 재능과 지식을 다 바쳐 일하자. 하루빨리 페허를 털고 조국을 더 좋게 더 아름답게 건설하자. 시간을 아껴가며 일하자, 조국에 돌아와 다졌던 맹세가 다시금 가슴을 쿵쿵 두드리였다.

담배꽁초를 내던진 문상혁은 려행용가방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청명한 가을날씨에 대기가 서늘해서인지, 점심식사를 한 이후여서인지 거리는 더욱 활기를 띠고있었다. 문상혁은 《온반집》이라는 간판을 내건 단층집이 보이자 그리로 찾아들어가서 닭고기온반을 배부르게 사먹었다.

그는 성에서 왜 자기를 소환하는지 알수 없었다. 지배인이 전화를 받고 그를 불러 《성에서 동무를 소환했소. 가족들은 후에 데려가고 우선 혼자 올라가서 지시를 받소. 하여튼 어떻게 물색했는지 모르겠는데 닭알 노란자위를 뽑아가는군.》 하며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문상혁은 열흘전엔가 갑자기 간부과에서 리력서를 쓰라 해서 썼던 일이 생각났다.

《저를 어디로 보낸답니까?》

이 물음에 지배인은 알수 없노라고 대답했다. 명백한것은 지배인도 감히 거역 못할 지시가 왔다는 사실이였다.

그는 성에 도착하여 우선 현시택부상을 찾아갔다. 부수상이 상을 겸하고있기때문에 성에는 상이 없었다. 그렇다고 현시택이 성을 대표하고있는것은 아니고 마침 그가 있었기때문에 우선 찾아가 인사를 하려 했던것이다. 가방은 접수실에 맡기였다.

얼굴이 하얗고 차거운 기운이 풍기는 현부상은 자기의 사무실에 앉아서 무슨 문건을 검토하고있었다.

《부상동지, 안녕하십니까?》

문상혁이 그에게 인사를 했다.

현시택은 눈을 잠간 들어 상대를 쳐다보고는 다시 문건에 눈길을 떨구었다.

문상혁이가 알건대 이 현부상은 사람들과의 교제를 사업상으로만 하는 극히 실무적인 일군이라 한다. 시간을 아끼고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인사야 받아야 할게 아닌가. 혹시 성에 있는 지도원으로 잘못 알고 다음 말을, 즉 용건을 말하기를 기다리는것이 아닌지?

문상혁은 간단한 설명을 하였다.

《성에서 불러서 왔습니다.》

현시택이 다시 그를 쳐다보았다.

《희천공작기계공장 문상혁이요?》 부상이 물었다.

초면이지만 부상은 그를 알고있었다. 그러니까 이 현부상이 불렀는가?

현시택은 산하기계공장들에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는데 그자신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것이다. 기계에 들어가서는 귀신이라고 하며 기억력이 비상한 현시택은 공장들에 내려가 보지 않고도 어느 공장에 무슨 기계들이 몇대 있고 기능공이 몇명인가 하는것을 수자적으로 말짱 장악하고있는데 그 수자에서 그 이상의 기계제품이 생산될수 없다고 확신하고있었다. 《하나에다 둘을 합치면 셋이요. 그것은 달리 될수 없소.》 그는 이 말을 즐겨 썼다.

자기를 알고있는데 감동한 문상혁이 《그렇습니다.》 하고 기쁨에 넘쳐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곧 랭대에 부딪쳤다.

《상한테 가보오.》

이것이 부상의 대답이였다. 그리고 부상은 눈길을 떨구며 문서를 한장 넘기였다.

문상혁은 서운하기도 했고 불쾌하기도 했다. 먼길을 온 사람을 그것도 산하공장의 기술부장을 앉으라는 인사말 한마디없이 세워 놓은채로 상대하고 내쫓다싶이 하는 부상에게서 인간미라고는 전혀 찾아볼수 없지 않는가. 무슨 간부가 이런가.

《저는 성과 상은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문상혁은 저도 어쩔새없이 부상의 랭랭한 태도에 이처럼 까박을 붙이였다.

현시택이 세번째로 눈을 들었다. 이번에는 그의 눈길이 상대방의 얼굴과 차림새를 더듬느라고 한동안 문상혁에게서 지체했다. 문상혁은 그의 눈과 표정에서 《로씨야의 흘레브와 빠다를 먹다온 풋내기같으니!》 하는듯한 경멸과 조소를 느끼였다.

현시택은 쓰다달다 더 말을 하지 않고 눈길을 떨구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문상혁은 그의 사무실을 나왔다. 불쾌했고 어쩐지 심장마저 싸늘해지는듯했다. 평양역에 내렸을 때의 흥분과 앙양되였던 기분이 가라앉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현시택이 실무에 밝고 빈틈없는 조직력과 장악력을 가진 일군이며 기계귀신이라 한다지만 인간에 대해 그처럼 차거우니 존경은커녕 환멸이 갔다.

현시택자신이 인간들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있는것 같았다. 무엇때문일가? 최근에 있은 반종파투쟁때 시련을 겪었기때문일가?…

접수실에서 가방을 찾아든 문상혁은 만수대아래 안침진 곳에 자리잡고있는 내각으로 찾아갔다. 정일룡부수상이 그곳에서 그를 기다린다고 행정국장이 알려주었던것이다.

나라의 최고행정기관인 내각에 처음 와보는 문상혁은 엄숙함을 느꼈다. 동시에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이곳에서 집무를 보신다는 생각으로 경건한 심정을 금치 못했다. 이곳은 전쟁때 폭격을 당했지만 옛 건물들이 더러 남아있었고 나무들도 가지들을 사방에 뻗치고 싱싱하게 서있었다. 단풍이 드는 나무가지들속에서 새들이 우짖고 가을바람 스치는 소리가 시내물 흐르는 소리처럼 들리였다.

접수실에서 군관이 그의 증명서를 깐깐하게 검열하고 사진을 본인의 얼굴과 대조해본 다음 부수상의 서기에게 전화로 문의했다.

얼마후 문상혁은 부수상의 서기실에 들어섰다. 해빛이 잘 드는 조용하고 작은 방에서 표정이 거의 없는 사람인 서기가 그를 걸상에 앉도록 권하고 말했다.

《잠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그는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상혁은 방에 손님이 있어 그런지 어째서 그런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Report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