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llo

Othello




 그 사제는 오셀로가 손을 들어 가리키는 것을 싫어했다.

 대신 소년은 묘사를 익혀 가지 위에 돋아난 많은 꽃봉오리 중 하나를 지정하는 단어와, 무수히 많은 별 중 가장 밝게 빛나는 것을 지칭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싫어하는 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기도 전에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먼저 궁금했다. 사제에게는 의미나 이유를 물었고, 일곱 살 어린아이의 무형 존재에 관한 탐구는 철학이 아니라 미숙함으로 비쳤다. 사제가 알아채지 못한 척할수록 오셀로의 단어는 직관적이며 세밀해졌다. 더이상 소년의 물음에 답하지도 피하지도 못할 때 그는 소년을 어둡고 널따란 공간에 밀어 넣었다. 반 층이 지면 밑으로 내려와 창문이 벽에 걸쳐져 있고 다 열어도 반밖에 빛이 들어오지 않은 축축한 공간이었다. 의자가 하나 놓여있었고, 그 외에 손에 잡히는 건 없었다. 으레 벌을 받는 이들이 들어가는 곳이었다. 오셀로는 그곳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사제는 그곳에 그를 앉혀두었다.


  “너를 여기에 데려온 건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늙은 사제의 얼굴은 어두운 곳에서 훨씬 지쳐 보였다. 어쩌면 어둡기 때문에 그런 표정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오셀로는 생각했다.


 “내가 네게 답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구나, 이렇게 작아 품을 떠나려면 멀었는데 너의 이야기는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가 없어.”

 탓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들렸다.

 “사제님, 저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매년 돌아오는 별을 이야기했을 뿐이에요. 분명 지난해 제 생일, 머리 위에 떴던 목동자리를 기억합니다. 그건 이번 제 생일에도 마찬가지로 찾아오지 않았나요. 계속 별이 매년 돌아온다면 세상의 끝은 저승까지 평평하지 않고 일 년 동안 어딘가를 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에요.”

 오셀로의 생일은 봄에 있었고, 그는 일 년 간 머리 위를 지나갔던 별자리의 모양을 어딘가에 적어 보관하고 있었다.

 “저 같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사제님이 모르신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까요.”

 사제는 반대로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생각했다.

 “감당이라는 말의 뜻을 잘 생각해보렴.”

 그런 식으로 던져준 과제들이 아이를 지나치게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도 자라버리는 아이를 막을 방법 또한 없었다.


“사제님은 그럼 저를 믿어주시나요?”

  “네가 말한 둥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니?”

 오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승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니?”

 없을 거라곤 차마 얘기하지 못했다. 그건 신성의 영역을 넘어간 것이었다.

  “반대편 어딘가엔 있겠죠.”

 오셀로에겐 저승 위를 떠돌다가 돌아오는 별자리를 상상하면 우습기만 했다. 사제는 오셀로가 묻는 질문들이 불경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의 재능을 그저 억누르는 것 또한 에온이 준 선물을 무시하는 불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바깥에선 마침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해 질 녘에 부는 바람이 방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그곳을 벗어날 때는 지평선 끝이 변색된 풀처럼 주황색과 푸른색이 섞여 안개처럼 깔려있었다. 오셀로는 손가락을 펼치려다가 주먹을 감아쥐고 뒷짐을 지어 양손을 잡았다.


 “지금 새가 날아가는 곳에 뜬 밝은 별이 보이시나요? 저녁 동쪽 하늘과 새벽녘에 태양과 달을 제외하면 가장 밝은 별입니다. 저 별만큼은 계절이 지난다고 하늘에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노년의 사제 눈에는 별보다 하늘에 뚫린 구멍마냥 흰 점처럼 보이는 것에 가까웠다. 영원처럼 보이는 별은 다른 별과는 분명 다를 거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름을 달리 지어줘야 하지 않을까. 가끔 더 알고 싶은 것에 대해 누군가가 이미 탐구를 마쳐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의문을 꺼내는 사람보다 이미 걸어간 곳을 뒤따라가는 사람이 되는 건 마음이 단단해지지 않을까. 예를 들어 그 황금 별에 이름이 붙여져 있다면 오셀로는 사제에게, ‘저 별’이 아닌 그것에 대한 이름을 불러줬을 것이다. 마음이 단단한 건 정체를 알 때만 갖는 확신과 비슷했다. 그런 단단한 시대에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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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셀리아와 걷는 카르스텐 성의 정원은 밤이 되어도 한기로 축축했다. 어둠 사이에 파고든 달빛만으로는 그녀가 목에 걸쳐준 여우의 털이 보라색으로 보였다. 오셀로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었으나 어쩌면 그 탓으로 몸집이 조금은 커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동방은 따듯했으므로 그곳에서 들여온 빛나는 천들도 마찬가지로 얇고 가벼웠다. 그러니 없는 천을 가져올 수도 없고, 방으로 달려가 코트를 들고 오는 동안 그녀를 기다리게 할 만큼 무례하지도 않았고, 정원의 솔잎들로 옷감을 지을 수도 없었으니 오셀로는 추위에 적응하고자 했다. 옆에 서 있는 아르셀리아는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흰 달빛 아래에서 넓은 정원을 두려움 없이 걸으니 그녀보다 더 큰 한기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셀로는 그 설녀가 자신의 걸음걸이에 속도를 맞춰주는 걸 보며 겨울을 좇아가는 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갑자기 문득 그녀가 먼저 앞서 걸어 끝없이 뒷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만들어진 지도나, 바다의 암초가 있는 곳을 표시한 항해일지를 본 것처럼. 오셀로는 앞서간 것들을 사랑했으나 그것을 온전히 믿은 적은 없었다. 되짚어봐야 하는 것과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그 모든 것을 감당하려니 소년에겐 성장보다는 정지가 필요했다. 

  

 마침 하늘에는 오리온 자리가 보여요. 오셀로가 말하자 아르셀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붉은색 별과 그 밑에 파란색 별이 있죠. 그 아래가 눈에 띄게 빛나는 것이 황금별이에요. 제 이름과도 같은 별이죠. 오셀로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황금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까요? 방금 보신 그 별이에요. 제가 황금별 명칭을 달게 된 유래는 9살 때 그 별이 담긴 하늘을 그린 것이 꽤 주목받았기 때문이죠. 태양과 달을 제외하고 가장 밝은 별이에요.”

 오셀로는 잠시 옛 기억을 떠올렸다. 작은 지방의 신전을 벗어나기 전까지 사제는 감당이라는 말을 가르치고자 노력했으나, 그건 오셀로가 가장 마지막으로 배운 단어였다.

 “그것을 관찰해본 사람들은 전부 거짓말쟁이라고 확신을 드릴게요. 물론 저를 포함해서예요. 매년 빙글빙글 도는 별들 사이에 하나만 놓여있는 황금별이라니, 어떤 걸 외면하고 있을까요.”

 계절마다 바뀌는 별? 아니면 평평한 바다의 저승? 

 “이젠 종교적인 이야기로 넘어갔는가?”

 “그렇게도 들리지만 단지 저의 옛날이야기랍니다.”

 숨을 내쉬자 입에서 흰 김이 나왔다.


 다시 생각해보니 무척 종교적이기도 했다. 이베르타의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말 중 그렇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오셀로가 그 별의 이름에 관해 탐구하자 사제는 자신의 이름의 뜻을 아느냐고 먼저 물었다. 그리고 탑 위에 있는 방으로 데려가 먼지가 낀 나무판을 꺼내왔다. 일 년을 꽉 채울 때쯤에 딱 한 번 크리스마스 만찬의 메뉴를 선정하기 위해 내기를 거는 게임임을 알려주었다. 색깔이 다른 두 말을 두고 하나씩 뒤집어가며 주변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는 게임이 오셀로였다. 사제는 저 별의 이름을 오셀로로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너는 황금을 퍼뜨려야 해. 그것을 제가 해야만 하나요? 네가 받은 게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 시대가 온단다. 누군가는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시대가 온단다.

 이런 얘기는 허물뿐이죠. 그는 손을 들어 황금별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저것을 오셀로라고 불러야지, 제가 황금 별이 되어야 하나요?”

 조금 웃었다.

 “당신을 검은 파도로 불리게 하지 마세요. 파도를 아르셀리아라고 부르게 하시죠. 제게 당신은 상아색이기도 하며, 동쪽에서는 동경하는 눈이며, 북쪽에서는 끝없는 눈일테니까요.”

 오셀로는 추위에 떨며 그녀의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다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별의 이야기를 한다면 불경이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에온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나요? 보세요, 별들이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을....”

 그녀의 눈이 하늘로 향하는 것은, 오셀로의 눈에 확실히 담겼다. 그림으로 그린다면 분명 밤 같은 그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문득 붓이 잡고 싶었다.


 오셀로가 그녀에게 물었다.

  “춥지 않으십니까?”

 “나보다 자네가 더 추워 보이는 군.”

 “조금 더 별의 이야기를 할까요.”

 “자네가 원한다면 그러지.”

 “저 별의 이름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요.”

 “원한대로 ‘오셀로’는 어떠한가.”

 “집착해서 얻어낸 건 부끄러워요.”

 오셀로는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대신 당신이 제가 그 이름을 짓는 힘을 주실 수는 있으시겠죠.”

 “본인이 자네가 원하는 동그란 세상을 말인가.”

 “바다 끝을 구부리라는 건 당연히 아니겠죠. 아르셀리아. 제가 무슨 말을 하시는지 당신은 알고 계시겠죠. 저희 사이에.... 이 관계가 무엇인지 함부로 이야기할 수도 없지만, 저희 사이를 망칠까 염려되는 건 어떤 말로 치장할 수가 없어요.”


 오셀로는 손끝이 얼얼해서 입김을 불었으나 벌써 감각이 사라졌다. 감기를 얻는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르셀리아, 제가 귀엽다 하시지 않으셨나요. 저를 위해 존재의 여부도 모르는 미래를 기약해주지 않으셨나요. 오셀로는 자유를 믿었다. 누군가에게 요청하거나 제안을 하는 것조차 버겁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양 손에 각각 든 짐이 무게가 달라 한쪽 손만 저리다면 둘 다 놓아버리는 것이 여태까지의 방침이었다. 방목이라고 누군가는 비난하더라도 어쨌든 지금까지 잘 짊어오지 않았는가. 가지고 있는 망원경이나 캔버스 따위로 겨우 힘들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놓고 싶거나 잡고 싶은 욕망에 대해서 불경이라면 불경일 것이고, 신의 힘의 월권이라면 그러한 것이고, 잡아보려 해도 오히려 집어 삼켜질 뿐인 검은 파도에 손을 내미는 것 또한 언젠가 빠져나갈 물결을 보며 쓸쓸함을 감수한 것이다.


 “소뵈르와 함께 하자고 청을 드리는 것이나, 그에게 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저에게 오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원하신다면 황금 별을 드리죠. 저에게 무대를 제안하지 않으셨나요. 당신을 초대한 무대가 즐겁지 않다면 기꺼이 펜대를 꺾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제 의미인 열 손가락을 바쳐 황금 별을 내리게 할 수도 있는 법이고요. 누군가는 두 눈을 거는데, 저도 그쯤은 해야 맞는 일이겠죠. 당신이 저의 파멸이 기껍지 않다면 소유도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오셀로는 늘 그랬듯이 아르셀리아에게 웃고, 밤을 꿈꿨다.


 “한 번 정도 생각은 해주시지요. 별을 따다 드린다는 말보다 더한 고백이 어디 있겠어요?”


 자아, 이제 안으로 들어가요. 북쪽의 파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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