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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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신 없이 달려든 메이지는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송곳니가 피부를 뚫는 얼얼한 고통에 팔에 힘이 들어갔고, 환부에 뜨거운 혀가 닿자 본능적으로 그를 밀어냈다. 그러나 며칠 만에 그토록 갈구하던 피를 맛본 메이지는 저지할수록 갈퀴처럼 파고들었다. 그는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는 피가 있을 새라 어깨죽지에서 입을 떼지 않았고, 쭙쭙거리는 소리까지 내가며 피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몸의 첨단부터 힘이 빠져나가는데도 사라는 그가 흡혈 중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흡혈귀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메이지가 혀와 입술을 사용해 환부를 자극하는 게 진한 키스마크를 남기는 애무라고 느꼈을 뿐이다. 그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까딱할 수 없었다. 눈꺼풀도 겨우 반만 떴다. 그렇지만 피를 목구멍으로 넘길 때마다 허리를 흔드는 메이지를 알아차리기에는 충분한 시야였다. ‘아하….’ 사라는 무릎을 세워 어깨를 무느라 내려온 그의 엉덩이를 쓸었다. 그리고 무릎을 더 당겨 메이지의 다리 사이에 부드럽게 가져다 댔다. 무릎에 맞춰진 샅을 압박하자 메이지가 몸을 떨었다. 어깨에 무거운 콧김이 쏟아졌다. 얼마간은 바지와 속옷가 비벼져 섬유가 마찰되는 소리가 들렸다. 어깨에서 입을 떼어낸 메이지는 적나라하게 밭은 호흡을 내뱉었고 그와 동시에 피 냄새가 진동했다. 사라는 물이 고인 곳이 어깨인지 무릎 쪽인지를 헤아렸다.


2.

파리해진 낯빛으로 살핀 어께에는 벌써 얕은 딱지가 앉았다(딱지가 앉기 전까지 메이지는 어깨를 핥아댔다). 사라는 이 소동이 자그마한 두 개의 딱지로 일축됐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헛웃음을 터뜨렸다. 메이지의 가방에 있는 옷으로 갈아입자 메이지는 품이 맞느냐고 물었다. 그의 옷가지는 전부 넉넉했다. 맞지 않을 리가 없었다.

“미안하긴 한가 봐?”

“당연하지….”

사라의 목소리에 쇳소리가 섞인 데에 반해 메이지는 갈증을 해소한 사람처럼 매끄러운 톤을 유지했다. 메이지는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그가 옷을 내어주고 안색을 살피며 충성을 맹세한 늑대처럼 구는 건 사라의 피를 협상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는 생각이 얼굴에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사라는 그를 그대로 둔다면 피를 마신 이유를 사지에서 동물의 피를 마신 것에 빗댈 듯해 막기로 했다.

“죽을 것 같다면서?” 흡혈이 급해진 메이지가 사라를 벽으로 밀어부쳤을 때 사라는 그를 죽이지 않고 이길 자신이 없어 고지를 점하게 내버려뒀다. “너까지 그러면 안 되지.”


3.

고성에 다다르기 전의 일이다. 메이지가 사라의 방을 찾아왔다. 술김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약속의 내용은 흐릿했지만 메이지의 노크소리는 선명했다. 문을 열자 그는 문지방을 밟은 채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제 했던 얘기들은 다 기억해? 그는 그렇게 물으며 방을 가로질러 창문을 열었다. 네 친구 이름이 자넷이라는 건 기억나는군. 사라가 대답했다. 이 대답을 보니 이날은 딸과 메이지가 세 달간 동거동락했다는 걸 안 바로 다음 날이었다. 메이지는 사라가 술김에 들은 자신의 친구 이름 쯤이야 지나쳤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감탄을 내뱉었다. 사라는 딸이 자신을 떠나 있었을 때를 진술할 수 있는 사람이 막상 등장하자 그 자리를회피했다. 죽은 딸의 일화를 듣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죽음의 원인과 그때를 결부시킬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지가 자넷에 관해 더는 말해주지 않을 것 같자 초조했다. 그래서 그때 그에게 자넷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구했다.


4.

‘너까지 죽으면 안 된다’는 말은 협상이 제시되지도 않았는데도 그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내포했다. 네가 피를 마시지 못함으로써 죽는다면 막을 것이다. 네가 죽지 않도록 피를 내어주겠다. 메이지는 거래에 능숙한 용병이었고 사라가 선뜻 피를 내어 주는 까닭을 빠르게 파악했다.

“그럼 내가 자넷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4-2.

자넷과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 애의 발은 엉망이었어. 맨발이었지. 손에 들린 구두는 한 짝 뿐이었어. 나머지는 말에서 굴러 떨어지느라 잃어버렸다고 했어. 그럼 한쪽이라도 신고 다니지 왜 벗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불편했다는 거야. 들여다 보니 양쪽 발뒤꿈치가 까진 채였고 피가 굳어 있었어. 발등엔 눌린 자국과 상처가 섞였고 발톱엔 흙이 끼었는데, 땅이 부드러워서 걷기엔 무리가 없었다고 말하더라. 그렇지만 맨발로 걸으면 고단하잖아. 서둘러 우리 집으로 향하게 했어.



4444.

그들은 규칙을 정했다.

사라는 하루에 한 회 일정량의 피를 메이지에게 제공한다. 일정량이란 현기증이 돌아 그가 메이지에게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로 측정한다. 메이지는 그 보답으로 사라에게 자넷과 살았던 세 달간을 끊임없이 묘사한다.

두 번째 흡혈은 합의 하에 일어나므로 온건할 것이다.

식당 테이블에 놓인 와인의 물그림자가 식사를 하는 이의 손가락 부근까지 기울어지자 메이지가 사라의 방으로 조심스럽게 찾아왔다. 그는 흡혈귀가 된 상황을 인지했으므로 하루 종일 배를 굶주렸다고 느꼈다. 그는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의 양과 시간이 한정된 게 불안한지 손가락 옆의 거스러미를 물어뜯었다. 사라는 팔을 내어주길 기다리는 그와 어제 매섭게 옷가지를 찢어내던 그가 본질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없음을 공기 중의 긴장을 통해 감각했다.

고성에 오기 전 그를 앞에 두고 긴장한 것은 한 번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넷이 자신의 딸임을 밝히던 순간이었다. 그는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지 않았는데도 동요했다. 벽을 짚은 채로 고함을 지렀다. 메이지는 그가 진정하길 기다렸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팔을 붙들었다. 사라는 그의 손을 내치려 했으나 헛손질에 그쳤다. 혼란스러움에 전염된 메이지는 사라의 이름을 부르며 평정을 유도했다. 그는 자넷을 본 게 워낙 오래 전이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신이 아는 선에서 사라의 질문에 답하겠다고 말했다.

사라는 흐린 눈으로 왼팔을 걷고 메이지에게 내밀었다. 메이지는 팔꿈치 안쪽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맥을 짚지 않고도 정확히 피가 흐르는 곳에 이빨을 가져다 박을 것이다. 

사라는 메이지가 어떤 질문을 받았고 답변했는지를 살펴보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성에 도착한 사라는 눈보라에 짐을 잃은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것을 놓고 온 듯했다. 그는 식사를 하다 말고도 감지 않은 태엽인형처럼 우뚝 서서 창가를 바라보곤 했다. 자신을 무겁게 만들던 것들이 눈발과 함께 날아가는 환상이 보여 눈이 바람에 휘말려 창가를 때리면 그곳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했다. 허브와 향신료가 뿌려진 고기파이와 스튜, 스프를 먹다가 그는 시대가 영원히 저물었단 감상에 젖었다. 그러다가 이곳에선 기억이 유령처럼 퇴장한다는 것, 자넷을 잊었단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넷을 잊었다. 자넷의 모발이 두꺼웠는지 얇았는지, 눈동자 색깔이 어땠는지, 목소리가 작았는지 컸는지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십 년 간 자넷은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그는 그림자를 단단히 바느질했다.

하지만 그림자는 올을 풀어 헤치고 유령처럼 빠져나갔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자넷이 허상 속 인물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라는 딸이 허상이 아님을 유일하게 증언할 수 있는 이가 팔에 코를 가져다 대고 침을 삼키는 모습을 보며 조금 안도했다. 그에게 피만 준다면 그는 늙지도 죽지도 않고 영생을 이루며 자넷을 진술해줄 것이다.

메이지는 절차에 맞춰 준비된 팔을 예의와 규격에 맞춰서 대했다. 그는 먼저 절제하듯이 입을 맞췄다. 눈을 감고 고통에 대비하자 머리와 어깨가 당길 정도로 선연한 통증이 팔을 관통했다. 메이지는 치아를 살갗에서 빼내고 입술을 오무려 흘러나오는 피를 삼켰다. 사라는 간신히 눈을 떠 목울대로 피를 넘기는 메이지를 바라봤다. 그는 성감이 느껴져 다른 곳에 자극을 분포시키려는지 사라의 팔을 힘줄이 돋을 정도로 거세게 쥐면서도 허벅다리를 교차시켜 미약하게 앓고 있었다. 사라는 고립된 고성에서 식욕과 성욕만이 생동하는 그에게 코웃음을 쳤다. 구두를 벗지 않고 메이지의 다리 사이를 발로 파고들자 메이지는 단단하게 얽어 놓은 다리를 풀었다. 그는 욕구를 숨기지 않고 사라의 발에 체중을 실어 기대며 허리를 움찔거렸다. 식사를 마쳤는지 머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라는 팔 위에 떨어진 그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간지럽다는 생각을 하며 발등의 열기에 집중했다.

일을 마치고 나서 메이지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우울하게 말했다. “사라도 죽으면 안 돼….”

사라는 그와 지하 세계의 석류를 나눠 먹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손목 안쪽의 문양이 삭제되더라도 그들은 서로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메이지가 사라를 해치고 그에게 충성했기 때문이다.

개와 늑대를 구분하기 힘든 해질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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