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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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 로그

<꿈>

잼에게는 아주 어릴 적부터 때때로 찾아오던 일정한 꿈이 있다. 꿈속의 잼은 無의 공간에 앉아있고, 건너편에는 잼의 운명이 앉아있는 것이다. 잼의 운명은 잼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성격이 나쁘다. 잼은 그녀를 여덟 살에 처음 보았다. 폭풍우가 치던 날이었다. 지붕으로 비가 새서 메리와 젠이 양동이를 가져다 놓았다. 밤새도록 양동이 속으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잼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는데, 어둠 속에서 운명이 나타나더니 잼에게 제리가 죽을 거라고 말했다. 제리는 잼과 같은 해에 태어난 메리와 젱의 아들이다. 잼은 제리가 비록 자신의 밥그릇을 실수로 엎거나 이따금 심하게 잠꼬대를 하며 자신을 발로 차긴 하지만, 그것은 별로 유감이 아니므로 이왕이면 제리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명은 어깨를 으쓱이곤 어쩔 도리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온 건 제리가 죽어서 잼에게 한동안 나쁜 일이 닥칠 거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말했고, 잼은 잠에서 깨어났다. 천둥이 번쩍 쳤다. 잼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제리의 침대로 달려갔다. 제리는 불처럼 뜨거웠다. 잼은 아픈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메리와 젱을 깨웠다. 그리고 제리에게 돌아왔을 때, 제리는 죽어있었다. 제리의 이마는 미지근해져 있었다.

그 때, 잼은 제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유감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잼은 그 공백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으나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알고 있는 단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게 많았다고 해도 어쩔 도리는 없었을 거라고, 나중에 잼은 생각했다.

폭풍우는 한동안 파멜라 항만의 골목 곳곳을 뒤엎어놓다가, 일주일 째 되던 날 마침내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메리와 젱은 양동이를 치우고 물을 비웠다. 그리고 숲 근처에 제리를 묻어주었다.

그 날 밤은 몹시 조용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도 없었고, 천둥도 치지 않았다. 잠꼬대를 하며 돌아다니던 제리가 잼의 침대로 기어들어가 그녀를 발로 차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잼은 그 고요함 속에 웅크린 채 뜬눈으로 생각했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공백을 하나 가지게 되는 일은 성가시구나. 그렇군, 이게 네가 말한 나쁜 일인가. 그러자 운명이 제리의 침대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운명들>

반듯하게 누워서 자던 잼이 눈을 떴을 때, 운명이 그녀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몇 년 만의 방문이었다.

“안녕.” 운명이 말했다.

“안녕.” 잼이 대답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걸.” 잼이 말했다.

“넌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걸.” 운명이 대답했다.

운명은 잼의 몸에서 일어나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잼은 책상다리로 앉아 그것을 구경했다. 그리고 자신이 저것보다 훨씬 잘 출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운명에게는 작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잼은 자신의 작대를 이용해서 더 멋진 춤을 출 수 있다.

운명은 마침내 손으로 땅을 짚고 한 바퀴를 돌았고, 고개를 들었을 땐 오셀로가 되어있었다. 잼은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쓰러뜨렸다. 운명을 타고 올라간 잼이 단도를 들어 목에 겨누었다. 오셀로의 얼굴로 운명이 후후, 웃음을 흘렸다. 이상한 꿈이구나, 라고 잼은 생각했다.

다음 날, 잼은 두 아이들을 데리고 북부의 큰 마을을 찾았다. 그곳에는 수배령이 내려져 있었는데, 수도에서 내려온 것이고 잼의 이름도 그 리스트에 있었다.

 

오셀로는 간밤에 아주 짧은 꿈을 꾸었다. 어떤 것을 깨뜨리는 꿈이었다. 다음 날 그는 석상에 매달려 조각을 했다. 그는 간만에 잡은 망치와 끌개로 무엇이든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강한 동풍이 불어와 그가 매달린 의자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오셀로는 그만 망치를 놓치고 말았다. 그는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꿈속의 일이 떠오른 그는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조각은 무사했고 깨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구나, 라고 오셀로는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성기사가 잼을 발견했다. 잼은 두 아이들을 내보내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성기사는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었고, 그녀는 가볍고 아름다운 천을 두르고 있었다. 기사들은 그녀를 순식간에 놓치고 말았다. 잼은 바람처럼 달렸다. 골짜기 위로 올라섰을 때,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왔다. 잼은 두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화살이 날아와 그녀의 어깨를 꿰뚫었다. 잼은 비틀거리다 말고 넘어졌다. 투생과 젱킨스가 달려와 그녀를 흔들었다. 어쩔 줄 모르는 두 아이들의 얼굴 너머로 구름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잼은 누군가 올라탄 것처럼 묵직한 기분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걱정 마. 빗맞았어. 결국 올라탄 건 나였으니.”

그러자 어디선가 운명이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 잼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좀 약 오르는 걸….”

그런 후 하늘이 온통 캄캄해졌다.

 

그날 밤 오셀로는 꿈속에서 바닥을 더듬어 깨진 조각을 찾아냈다. 그것은 몹시 날카롭고 작았다. 오셀로는 그것을 집어 들다말고 손가락을 베였다. 핏방울이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셀로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피를 핥아냈다. 상처가 깊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피가 났다. 오셀로는 피가 멈출 때까지 손가락을 문 채로 상처를 핥거나 빨아들였다. 긴 꿈이었다.

다음 날 느지막이 작업장을 갔더니, 조각의 일부분이 깨져 일꾼들이 바닥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셀로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바람이 불어 작업장 도구가 떨어지면서 부딪힌 것 같다고 일꾼 하나가 대답했다. 그는 오셀로가 일찍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조각상이 떨어진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파편이 떨어진 곳은 오셀로가 매달려 작업하는 장소 바로 머리 위였다. 오셀로는 그곳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 아니었구나.

 

투생과 젱킨스는 화살에 맞은 잼을 과과의 등에 지고 산을 넘어 도망쳤다. 마을로부터 멀리 달아났다고 느꼈을 때, 그들은 천막을 치고 그녀의 어깨에서 화살을 뽑아냈다. 화살은 빗맞았지만 아주 깊숙이 박혀있었다. 피가 많이 났다. 두 아이들은 잼이 살아남지 못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투생과 젱킨스는 돌아가며 밤을 샜다. 그녀의 어깨를 압박하고 붕대를 자주 갈아주었다. 그리고 간간이 깨끗한 물을 천에 적셔 상처를 닦아주었다. 새벽이 되자 거짓말처럼 피가 멎었다. 물을 길러온 투생이 그녀의 곁에 무릎을 접고 앉아 붕대를 풀어보았다. 그러자 마치 누군가 공들여 염원한 것처럼, 막 아물기 시작한 상처가 불빛 속에서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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