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ong time ago

a long time ago

No one can't remember






 결혼을 얘기하며 납치를 자행했던 남자와 같은 배를 타게 된다는 걸 알았을 때에는 금방이라도 이 배가 침몰하는 줄 알았다. 코이루는 이 기가 막힌 상황에 대해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헛웃음을 삼킬 수 밖에 없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코이루 쨩은 머한다고 쿠로코가 됐누?"

"하?"



 키세키의 질문에 어떤 의도가 담겨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그와는 별개로 그 질문이 주는 감상이 코이루의 머리속을 어지럽힐 뿐이었다. 어쩌면 조금은 미치게 된 이유 때문일지도.



*



 우나즈키 코이루가 가진 가장 오래된 기억은 뒷골목을 뛰어 도망가는 기억이었다. 그게 몇살이었더라, 네살? 다섯살? 어디선가 주워신은 낡은 신발이 뛸 때마다 턱턱 하고 덜그덕거렸다. 뭔가를 훔쳤던 것 같은데 그 외에는 기억나는게 없다. 

 사실 왜 그런 곳에서 자라고 있었는지는 아는 바가 없었다. 코이루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니까 꽤 갓난아기 때였을 것이다. 그런 곳으로 흘러들어온 아이들은 크게 부모가 버렸거나, 혹은 부모가 죽고 부양해줄 가족이 없어 버려졌거나, 부모를 잃고 운이 나빴거나 셋 중 하나였다. 그러니 코이루도 그 셋 중에 하나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우나즈키, 라는 성을 붙여준 걸 보면 분명 부모가 있기는 있었던 모양인데 찾지 않는 거라면 아마도 부모가 버린 것이겠지.

 뒷세계는 어지러웠다. 두개로 나뉘어 대립하는 조직이 부딪힐 때마다 그 여파는 썰물처럼 아래까지 닿게된다. 가장 밑바닥에 살았던 자신은 매일매일이 얼마나 힘겨웠나. 오늘 이 골목을 으스대며 누비는 사람이 내일은 배에 바람구멍이 나서 개들의 먹이가 되고, 내일 다시 사람만 변해 골목을 휩쓸고 다닐 것이다. 그런 것들의 아래에서 비위를 맞추며 하루를 버티는 일은 매 시간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실 어린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했다. 하루 이틀을 굶고 건너뛰는 경우도 있었고, 운이 좋으면 누군가가 먹을 것을 챙겨줬다. 대부분 몸을 파는 유흥업소의 젊은 여자들이었다. 가게 뒤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끼니를 해결했다. 몸집이 작고 머리가 좋아서 두번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며 가게 사람들은 코이루를 썩 유용하게 생각했다.

 열 살가량 됐을 때엔 소매치기도 같이 했었나? 제법 쏠쏠했다. 하지만 운이 나빠 잡히는 날에는 골이 얼얼하도록 얻어맞기도 했다. 재수도 없지. 그때 길거리에서 죽었더라면 오히려 편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목숨은 어찌나 질긴지 죽지를 않았다. 수익이 좋으면 같은 뒷골목의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었고, 자신들을 관리하는 누군가의 심기가 어지러울땐 아이들을 빼돌리기 바빴다. 

 죽지 않은 하루하루의 연속. 코이루는 자기 자신의 과거를 그렇게 정의했다.


 지겹게도 그런 하루하루가 쌓이면 시간이 흐르는 법이라, 길바닥에서 십년을 채웠을 쯤엔 알음알음 뒷세계에 대해 모르는게 없을 정도였다. 누구와 누구가 원한 관계인지, 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사람들은 생각보다 그런 것들을 숨길 줄 모르고 줄줄 흘려댔다.

 열넷, 깡마른 몸이 훌쩍 자랐을 때 코이루는 한 가지를 선택해야했다. 사실은 그보다 조금 더 어릴 때부터 하긴했어야 했지만 요리조리 잘 피했지. 누군가가 선택권을 쥐어준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보련? 하고 친절하게 물은 것도 아니었다. 한쪽이 진절머리 나도록 싫으니 나머지 한 쪽을 선택할 밖에. 선택의 상황은 거칠었고, 코이루가 선택한 쪽은 차라리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었다. 어땠더라, 티끌 하나 묻지않은 사람들이 논하기 좋아하는 법으로 따지자면 자기방어 중에 생겨난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할 것이다. 어른의 목덜미에 꽂아넣은 칼이 꽤 깊이 푹 박혀 뼈 사이를 파고들었는지 빠지지를 않았다. 빼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그 와중에 얼마나 칼을 세게 쥐었는지 험한 손바닥이 까질 정도였다.

 소름이 끼쳤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였다. 이 남자가 다시 일어나서 자신을 쫓아오면 어떡하지? 그때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진짜로 죽은 걸까? 바닥에 누워 눈을 까뒤집고 있는 남자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소리를 들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게 코이루가 기억하는 첫 살인이었다.


 처음이 있고나니 두번째는 어렵지 않았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꼬셔서 데려가 위험한 일을 시킨 놈이었다. 아이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그 놈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에게 찾아가 값을 요구했다. 죽여줄테니, 내게 값을 치르라고. 그때부터 대가를 받고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 기왕 피로 더럽혀진 손이라면 한번을 적시든 두번을 적시든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제법 돈이 됐다. 고정해서 찾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죽여주니 원한관계가 있는 사람은 앞뒤 가리지 않고 코이루를 찾아왔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받아낸 돈으로 뒷골목에서 함께 자란 아이들을 한명씩 빼돌렸다.


 세상에서 귀하고 천한 것들을 나눌 수 있다면 코이루는 자신이 천한 것들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세상이 거꾸러져도 자신은 천한 인간일 것이다. 남을 죽여 그 핏값으로 목숨을 잇는, 그런 사람. 하지만 그렇게 자라고 싶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있던 곳이 천한 곳이었기 때문이지 다른 무슨 이유가 있을까.

 첫번째 살인을 하고 남자의 지갑을 털었다. 만 엔짜리 지폐 수십장이 나왔다. 수표는 어차피 쓰지 못할테니 버려버리고 현금만 챙겼다. 그걸로 평소 지나다니며 먹지 못했던 아이스크림과 케이크, 사탕, 과자 같은 것들 잔뜩 샀다. 같은 골목의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코이루 스스로도 배가 터지도록 단 것을 먹었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다디단 것들을 퍼먹자 기분이 나아졌다. 동시에 무척이나 서러웠다. 스스로가 무척이나 더럽고 천하게 느껴졌다. 그 날만큼 죽고싶었던 날이 없었다.

 자신은 천한 인간이었다.


 그 날 이후로 익힌 재주가 사람을 죽이는 재주 뿐이었다. 코이루가 속한 세계는 점점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변했고 맡겨지는 일들의 위험도도, 책정되는 액수도 점점 치솟았다. 더러웠다. 이렇게 유지되는 뒷세계도, 그 세계에서 주어지는 재화로 살아가는 자신도. 


'이 세계는 뭔가 잘못되어있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가장 큰 세력 두 곳이 서로 대립하기 때문이야.'

'네가 겪은 모든 부당함은 거기서 나오는 거란다.'

'뒷세계가 정리되면, 너처럼 고통받으며 자라는 사람도 없겠지.'


 야규도 카스가야마도 사실은 어떻게 되든 좋았다. 어쩌면 둘이 치고박고 싸우다가 사이좋게 괴멸해버렸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두 조직을 망가트려버리기로 결심한 뒤에 카스가야마에 들어가게 됐지만, 들어갈 당시만해도 야규도 카스가야마도 자신이 베어버린 첫번째와 같은 인간들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충격적이게도 그곳에는 코이루가 만난 가장 상식적인 인간들이 있었고 그 차이가 코이루를 다시 한 번 무너지게 했다.

 천한 사람. 두목은 자신의 손에도 피가 묻었다고 한 적이 있었다. 코이루는 그것이 같은 값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두목이, 토라가미 호카게가 자신의 것들을 지키기 위해, 조직을 유지시키기 위해 칼을 휘둘러 다른 사람들을 구해내는데 묻은 피라면, 코이루가 손에 묻힌 피는 그 것과는 달랐다. 그 값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신뢰한다고 얘기했다. 오오나가미 아이는 코이루의 칼질을 '재능'이라고 말했고, 코이루라는 원석을 깎아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토라가미 세츠나는 코이루가 동경하여 따를 만한 선망이 되었다. 토라가미 유우야는 평생 받지 못한 가족같은 관심을 주며 그곳에서 코이루가 뿌리내릴 수 있게 했다. 

 솔직히 꿈만 같았다. 이런 세상이 있구나. 내가 여기에 뿌리를 내려도 되겠구나. 여기서 살아가도 되겠구나. 그런 꿈을 잠시, 아주 잠시 꿨다.


 맹약의 검은 코이루의 손 안에 있었다. 맹약은 지켜져야했다. 이곳을 사랑하고 지키고 싶다고 생각 할 때마다 자신의 뒤에서 차갑게 자라온 어린 시절의 코이루가 냉소했다.

 

 '너는 벌써 잊었지, 그 계절을. 그 순간을.' 


 잊지 않았다고 해야했다. 자신의 세상이 뒤바뀌던, 천한 인간이 되던 그 순간을.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더러움을 선택했던 날을. 그러니 제 귀에 속살거리며 맹약의 검을 쥐어주던 목소리가 했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다. 두 조직을 어지럽게 흔들어 망가트리고 다시 새롭게 하면, 제 2의 우나즈키 코이루는 없을지도 모르니까.





*





"무슨 생각을 글케 하노? 내도 옆에 있는데 쪼매 서운하게. 혹시 내 생각했나?"

"아니, 잡생각."

"왜~ 내 생각도 쪼매 해주지."

"....그래, 차라리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


 코이루는 스물이 됐다. 그 날에서 벌써 그만큼 시간이 흘렀고, 주워 신은 신발을 덜그럭거리며 뛰는 꼬마가 아닌 제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흰 후리소데 자락을 흩날리며 종종 걷는 또 다른 사람이 됐다. 그럼에도 코이루는 그 옛날의 자신을 잊지 말아야 했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테니까. 그렇게 쓰다 버려질 아이 같은 건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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