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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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ㄷ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그 해 2월에 나는 외조모와 외조부 두 분이 살고 있는 단촐한 다세대 주택으로 짐을 옮겼다.

중학교 3학년 때 반의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은 내가 서울 외곽의 그저 그런 낡고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끝까지 아쉬워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 해 꽃다발을 안겨준 삼촌 내외와 마지막 사진을 찍고 인사를 하면서도 네가 하고자 하기만 한다면 음악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거라고, 너 정도의 실력이면 어렵지도 않을거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나는 애매한 웃음과 작별인사로 답했다.

"하진, 짐 정리 해?"

아무리 청소기를 밀고 걸레질을 해도 묵은 먼지가 켜켜이 눌린 방이었다. 거처를 옮길 때마다 끌고 다니던 낡은 캐리어에서 고등학교 교복을 꺼내 손으로 탁탁 털어 주름을 펴고 있을 때였다. 외삼촌은 문간에 서서 이미 활짝 열려있던 방문에 대고 노크를 해 주의를 끌었다.

"네, 삼촌. 안 도와주셔도 혼자 할 수 있어요."

살짝 웃어보이면서도 섣불리 거절부터 하는 말투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생긴 버릇이었다. 삼촌은 가벼운 웃음으로 털어내고 방 안으로 발을 딛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성인 남성의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 상자였다.

"이게 뭐예요?"

"졸업 겸 입학 선물이야. 열어봐."

담백하게 포장된 남색 상자를 받아들었다. 상자는 크기에 비해서 묵직했는데, 열어보니 빈티지한 뉘앙스의 손목시계가 들어 있었다. 케이스에 비해 물건이 낡은 것으로 보아 포장할 상자를 따로 구한 모양이었다. 두꺼운 가죽줄은 딱딱했지만 길이 잘 들어있었고, 무광의 은색 베젤과 앤틱한 서체의 숫자판이 오래된 느낌을 더했다.

시간은 현재 시간에 맞춰져 있었다. 시계를 꺼내 손목에 차자 손으로 들었을 때보다 무겁게 손목에 안착했다. 가운데 즈음의 구멍에 버클을 끼우니 어색하게 헛돌지 않고 딱 맞았다. 숫자 12 아래에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새겨진 그 시계는 삼촌이 대학생이던 시절 차고 다니던 것 중에 가장 비싸고, 가장 애지중지 하던 물건이라고 했다. 본래는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다는데 사촌은 이제 겨우 5살이었다.

나는 그 시계를 도로 케이스에 담아 책상 위에 고이 모셔뒀다가 등교 첫날 새 교복을 입고서야 처음 제대로 차봤다. 시계는 무거웠지만 일상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라 금방 익숙해졌다. 문제는 건전지와 초침 소리였다. 아무리 아껴 썼다고 해도 오래된 시계는 약을 갈아도 금방 멈추기 일쑤였고, 낡은 무브먼트는 그 당시의 유행이었는지 착 착 착 착 듣기 좋은 소리를 냈지만 공부할 때는 여간 신경이 쓰였다. 서너번 배터리를 보충하고나서는 그 시계를 잘 차고 다니지 않게 됐다. 네 번째로 멈춘 시계를 다시 케이스에 장식품처럼 넣어두고, 나는 가볍고 소리가 나지 않는 수능용 전자 손목시계를 새로 샀다. 2만원 선의 싸구려였다. 더이상 쓰지 않게 됐지만 삼촌에게서 내게로 소유가 넘어온 그 시계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가진 것중에 가장 값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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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지품 중에서 부모님과 살던 집에서 가져오지 않은 거의 유일한 물건이었다. 대체 어쩔 작정으로 그걸 들고 나왔는지. 어쩌면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계속 떠돌아 다닐 일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수중에 가진 돈이 전부 떨어지게 된다면 팔아서 찜질방비라도 마련할까, 막연한 상상을 했다.

찬바람을 맞은 얼어붙은 뺨이 에는 듯 했다. 마치 이전에 알던 겨울이 아닌 것 같았다. 세간살이가 반쯤 비어버린 집에서 본래는 조부모와 나의 몫이었다가, 조부와 나의 몫이 되고, 이제는 오롯이 내 몫이 되어버린 괴괴한 적요를 견디지 못하고 무작정 뛰쳐나온 참이었다. 교복 겉주머니에 들어있던 돈은 꼴랑 오 천원 뿐으로, 어디에도 갈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야 좋을지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깊고 어둡고, 그리고 추운 밤이었다. 며칠 전 내렸던 눈이 반쯤 녹은 도로는 질척하고 더러웠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스쳐보냈다. 버스 한 대가 설 때마다 사람들은 우르르 올라타거나 내렸다. 버스가 출발하면 잿빛으로 지친 표정의 사람들이 일시에 기울었다 덜컹덜컹 지나갔다. 그들에겐 필시 이 밤에 몸 누일 자리가 있으리라. 작게나마 자신의 자리가 있으리라. 한발 바깥에서 그를 무연히 관망하는 나는 그 자그마한 자리에 대해 골몰했다. 밤이 깊을 수록 버스가 지나다니는 빈도가 줄고 이용하는 승객의 수도 줄어갔다. 막차 운전기사는 정류장에 앉은 내 앞에서 슬쩍 속도를 줄였다가 자신의 승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그대로 지나쳐갔다. 차가 달리지 않는 도로는 어두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도 행인이 적었다. 그도 그럴것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나다닐 이유가 없는 깊은 밤이었다. 자꾸 바람이 불어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어쩌다 한번 스쳐가는 사람은 내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의 눈엔 내가 늦게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평범한 학생으로 보였겠다고 생각했다. 주머니에 든 시계를 꽉 쥐었다. 돌연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차고 섬약한 눈송이가 한들한들 떨어지고 있었다. 눈송이는 쌓이지 못하고 얼마간 축축하게 어깨를 적셨다. 그 즈음에, 나는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 뺨에 눈물이 닿아 따갑고 쓰려서 목도리에 자꾸 뺨을 문질렀다. 곧 목도리의 안과 밖이 차고 축축하게 젖었다. 숙인 뒷통수에 계속해서 눈이 쌓이고, 그때 나는 부디 내일이 오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차라리 이 밤이 계속 되기를, 내일이 오지 않길, 세상에는 해가 뜨더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내일이 없기를. 누구한테 비는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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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그가 그렇게 물어왔을 때 왈칵 서러웠다. 진하고 섬세한 향이 나는 작은 꽃잎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쥐어보았다. 부드럽고 섬약하다. 아름다웠다. 잠깐 새에 향이 묻은 손가락도, 흰 화분을 쥔 손등에 불거진 뼈마디나 팔뚝에 돋은 힘줄 같은것, 혹은 그저 최보영 그 자체가.

"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형."

마냥 웃자니 마음 한구석이 술렁이고, 그렇다고 울자니 도처의 공기마저 행복으로 느껴져 필시 우스꽝스러운 표정이었으리라. 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향이 문득 훅 끼쳤다. 넘겨받은 화분을 어쩔 줄 모르고 들고 있다가, 나를 위해 꽃을 돌봤다는 남자에게 입을 맞췄다. 그렇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다. 한번, 두번, 세번... 그러다가 함께 웃었다.

"마음에 들어?"

"네... 엄청 형 같아요."

화분을 내려다보면서 하는 소리에 최보영은 뭐? 하면서 눈썹 끝을 치켜올렸다. 화분을 품에 껴안으면 부드러운 이파리와 꽃잎이 맨가슴을 간지럽혔다. 창틀에 걸터앉은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면 높이가 딱 맞았다. 가져가. 집에요? 집에. 여기에 두고 싶어요. 여기에? 응. 목덜미에 고개를 기댄 채 시답잖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창 밖이 환했다.

"꽃을 길러본 적이 없어요."

"가르쳐 줄게."

"같이 키워요. 자주 보러 올게요."

사람이 복작대는 집에는 무언가를 키울 만한 형편도 되지 않았다.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내 고집에 대해 크게 말을 얹지 않았다. 환한 낮의 가을 하늘을 함께 바라보며 나는 이 순간이 계속 되기를 바랐다. 그 어느날 밤에 빌었던 바람과는 정 반대의 소원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매 순간이 절정 같았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아까보다는 지금이 더 나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ㅠㅠㅠ보영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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