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4

1204


12월 3일

<일군들의 실력의 높이, 복무관점의 높이는 곧 단위발전의 높이이다>

책임진다는 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세포군산림경영소 성평감독분소 분소장 남창수동무의 사업에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자기 부문, 자기 단위의 일은 자기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립장에서 맡은 사업을 혁명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최근년간 세포군산림경영소 성평감독분소는 자체의 힘으로 생산 및 생활토대를 그쯘히 갖추어놓아 힘있는 단위, 생활력있는 단위로 소문을 내고있다.

번듯하게 일떠선 분소건물과 곳곳에 펼쳐져있는 숲사이양묘장들, 종업원들이 실지 덕을 보는 후방기지…

그 어디를 돌아보나 자기 단위 사업을 추켜세우기 위해 아글타글 애쓰는 참된 주인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어느 단위에나 다 그 단위 사업을 맡은 책임일군이 있다.

오늘 당은 우리 일군들이 자기 부문, 자기 단위의 일을 자기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립장에서 사업을 통이 크게 전개해나갈것을 바라고있다.

 

 

한개 단위를 맡은 일군이라면 누구나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한번 본때있게 일을 해보려는 의욕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기마련이다.

몇해전 이곳 분소장으로 임명된 남창수동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단위실태를 료해해보면 하나부터 열까지가 손맥이 풀리게 하는것들이였다. 당시 분소에 건물 하나 없었던 사실만 놓고보아도 그러했다. 형편이 이러하다보니 여러 리에 분산되여 일하는 산림감독원들과 종업원들이 며칠에 한번씩 모여 회의나 학습을 할 때에는 다른 단위의 건물을 빌려쓰군 하였다. 그러면서도 우리야 힘이 없으니 별수 없지 않은가 하는것이 이들의 만성적인 태도였다.

남창수동무는 이것을 단순히 건물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실무적인 문제로 대하지 않았다. 산림감독원들과 조림공, 산리용반원들은 시기시기 산림부문앞에 제시되는 당정책적요구와 앞선 나무모생산방법 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앞장에서 실천에 구현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 분소라고 부를수 있는 건물마저 없으니 이들에게 어떻게 자기 단위에 대한 애착심이 있을수 있으며 산림복구사업에서의 성과를 기대할수 있겠는가.

분소장과 같은 시기에 분소당세포위원장사업을 시작한 신광철동무의 생각도 분소건물을 꾸리는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단위사업을 혁신해야 한다는데로 지향되였다.

분소건물을 꾸리는 사업에서 남창수동무가 선차적으로 내세운 문제가 있었다. 집단의 마음을 하나로 합치는것이였다. 이 문제를 중시한 까닭이 있었다.

건물건설과 관련한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그는 종업원들과 자주 만났다. 그때마다 남창수동무는 이들이 제힘을 믿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다른 단위 사람들도 그에게 괜히 고생을 사서 하지 말라고 하였다.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이 대중에게는 왜 납득이 되지 않는가.

이 문제를 두고 고심하던 어느날이였다. 그는 북평리의 한 산림감독원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겼다는 사연을 전해듣게 되였다. 본인을 만나 왜 이런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는가고 묻자 산림감독원이 한동안 바재이던 끝에 하는 말인즉 남들에게야 이런 일을 어떻게 부탁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그 말속에는 자기 단위 일군을 진정으로 믿지 않고 남처럼 생각하고있는 마음이 비껴있었다.

심각한 교훈을 찾은 분소장은 종업원들의 일을 자기 가정일보다 더 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풀어주기 위해 먼길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속도 많이 태웠다.

말과 행동에서 가식을 모르고 자기 종업원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지려는 분소장의 진정은 대중의 심금을 울리였다. 점차 분소장과 종업원들사이에 혈육의 정이 오가게 되였다.

집단에 따뜻한 정이 흐르고 모두의 가슴속에 무슨 일이든지 우리 힘으로 해보자는 배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런 때 분소건물을 꾸리는 문제가 당원들의 모임에 상정되였으며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건물건설부지로 정한 곳은 돌이 많다 못해 무지를 이루고있는 땅이였다. 분소장이 높은 산에까지 올라가 사방 내려다보던 끝에 찾은 곳이 바로 여기였다. 일부 종업원들은 언제인가 전문건설단위에서도 여기에 부지를 정하려다가 포기하였는데 화물자동차 한대 없는 분소에서 무슨 수로 건물을 짓겠는가고 우려하였다.

당이 맡겨준 한개 단위를 추켜세우지 못하고 걱정만 하는 일군이 과연 무엇에 필요하겠는가.

분소장은 굳은 각오를 안고 분발해나섰다. 그의 뒤를 종업원들이 따라나섰다. 이들에게 있는 작업도구란 삽과 곡괭이, 함마, 정대 그리고 맞들이, 질통뿐이였다. 모두가 달라붙어 돌을 춰내고 운반하였다. 큰 돌들은 땅을 깊이 파고 묻으면서 기초를 형성해나갔다. 돌을 너무 다루다보니 손을 펼수가 없어 현장에 운반해온 밥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나마 한지에서 쏟아지는 비물에 말아먹다싶이 하기도 하며 힘겨운 공사를 벌리였다. 긴장한 자재문제를 푸는데 앞장선 분소장의 뒤를 따라 신금일, 최광남동무를 비롯한 종업원들도 적극 떨쳐나섰다. 분소장은 집을 떠나 현장에서 살며 일하는 산리용반원들의 생활을 돌봐주기 위해 애썼으며 이들의 가정을 찾아가 걸린 문제도 풀어주었다.

분소에서는 도토리와 오미자를 비롯한 산열매를 따들여 실정에 맞게 자재문제를 해결해나갔다.

군당책임일군과 군산림경영소일군들도 자주 나와 분소종업원들을 고무하며 힘껏 떠밀어주었다.

그리하여 읍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깊은 산간지대에 사람들의 눈길을 대번에 끄는 분소건물이 보란듯이 일떠서게 되였다.

학습실, 체육 및 문화생활을 할수 있는 방들, 합숙 그리고 창고 등을 그쯘히 갖춘 여러동의 건물…

종업원들이 자기 단위를 《나의 초소, 나의 일터》라고 정담아 부를수 있게 만든것, 여기에 단위를 책임진 일군으로서의 긍지와 보람이 있었다.

 

 

한개 단위를 책임진 일군들은 종업원들의 생활에도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

언제인가 남창수동무는 종업원들과 함께 이동작업을 나갔었다. 그때 이들이 펼쳐놓은 점심밥곽을 보며 그는 생각이 많았다. 어느 가정에서나 생활형편이 어렵다는것이 느껴져 남창수동무의 마음은 몹시 무거웠다.

사업토의를 위해 군산림경영소에 갈 때마다 그는 모체양묘장을 현대화하고 종업원들의 생활을 책임적으로 돌봐주고있는 만리마시대의 전형으로 온 나라에 알려진 박병준지배인의 일본새를 보면서 가책되는바가 컸다.

종업원들에게 어려움을 참고 견디여야 한다고 말이나 할것이 아니라 천사만사를 제치고 이들의 생활조건보장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맡은 일에 전심전력할수 있다.

당시 분소종업원들의 생활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사업은 축산에 필요한 집짐승 한마리 없는 말그대로 빈터에서 시작해야 하였다. 하지만 그는 땅과 공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낼수 있다는 배심을 가지고나섰다.

남창수동무는 생활토대를 꾸리는데서 물감장사처럼 타산을 꼼꼼히 하였다.

축산기지건물을 꾸리고 효과있게 리용하여 여러 종류의 집짐승을 기르기 위해 책을 보고 형성안을 그리면서 밤을 밝힌적이 얼마인지 모른다. 원가를 낮추면서 많은 돼지를 길러내기 위한 방법도 이 과정에 찾았다.

그는 종업원들에게 고기를 정상적으로 공급하자면 한해에 돼지를 몇마리 길러야 하는가를 계산한데 기초하여 돼지우리면적을 정하고 바닥을 1m깊이로 파도록 안을 세웠다. 여기에 토착미생물처리를 한 벼겨를 넣어 돼지를 기르면 알곡먹이소비기준을 낮추고 겨울에는 온도보장을 할수 있었다.

또한 돼지가 있는 칸마다 자주 깃을 깔아주고 걷어내지 않아도 되기때문에 관리공이 적어도 되며 우리안의 불쾌한 냄새를 없앨뿐아니라 많은 거름을 생산할수 있어 여러모로 좋았다.

그는 종업원들이 고기와 함께 버섯, 남새 그리고 바다 먼 산촌에서 물고기를 먹을수 있게 하기 위해 길을 걸으면서도 궁리를 하고 일단 방도가 서면 무조건 실천하였다.

축산기지건물안에 버섯재배장을 꾸리고 건물과 잇달아 온실을 지으며 여기에 양어못을 만들어 돼지우리에서 나오는 배설물이 흘러들게 하는 식으로 먹이를 보장할수 있도록 하였다.

생활토대를 꾸렸다는 형식이나 차릴것이 아니라 종업원들이 실지 덕을 볼수 있게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그는 축산기지건물의 앞마당도 비워두지 않고 양어못을 또 하나 만들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못과 축산기지운영에 필요한 물은 산에 수원지를 만들어 자연흐름식으로 흘러들도록 설계를 면밀하게 하였다.

이 설계가 현실로 펼쳐진 축산기지에서 돼지와 닭, 게사니, 토끼 등을 기르고 산에 있는 자연풀판을 리용하여 염소기르기를 하면서 자체로 생산한 고기와 꿀을 종업원세대들에 공급하게 되였다. 버섯과 남새도 생산하고 축산을 활성화하여 마련한 여러가지 가공설비들을 차려놓고 부수입을 늘이였다. 그것으로 기름을 비롯한 식료품이며 생활필수품까지 공급하게 되였을 때 종업원들이 얼마나 좋아하였겠는가.

남창수동무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자만도취, 자화자찬은 종업원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데서 금물이다.

후방사업은 곧 정치사업이며 사회주의수호전이라는것을 깊이 명심한 그는 종업원들의 생활향상을 위한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신발창이 닳도록 다니며 습지를 개간하여 부업토대를 마련하는 사업도 내밀었다. 누구도 곡식을 심을수 없다고 하던 산골짜기의 습지에서 림농복합경영방법으로 먹이작물을 생산하여 집짐승먹이를 해결하는 등 후방사업강화를 위한 가능성들을 적극 찾아 리용하였다.

이렇게 되니 종업원들의 사기가 높아져 분소는 산림조성과 보호관리사업에서 앞장서나가게 되였다. 이 나날 남창수동무는 공훈산림공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그전에 이름없던 분소가 오늘처럼 전변된 사실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높은 실력과 헌신성, 뜨거운 인정미를 지니고 자기 단위를 당이 바라는 높이에 올려세우기 위해 아글타글 애쓰는 일군만이 자기 사업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립장에 선 일군이라고 말할수 있다는것이다.



12월 3일 《우리 민족끼리》외세굴종이 낳은 비극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 《단호히 대응할것이다.》, 《승리의 력사를 만들겠다.》, 《도전에 굴복하면 력사는 또다시 반복된다.》, 《다시는 어두운 시대로 돌아가지 않겠다.》, 《일본의 부당한 행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

이것은 일본반동들의 파렴치한 경제보복행위에 분노한 민심앞에서 지난 시기 남조선당국과 여당이 쉬임없이 읊조리던 《대일강경》발언들이다.

그런데 그처럼 《결연한 반일의지》를 다짐하며 큰 일이나 칠것처럼 놀아대던 남조선당국은 남조선일본《군사정보보호협정》의 종료를 몇시간 앞두고 《조건부연장》이라는 비굴한 결정을 내린데 이어 외교부 장관을 일본에 보내여 《<한>일외교장관회담》을 벌려놓고 아베것들에게 관계개선을 구걸하는 추태를 부렸다. 그야말로 산이 들썩한 끝에 쥐새끼 한마리라는 격이다.

이것은 체질화된 외세의존정책이 빚어낸 또 하나의 반민족적범죄행위로서 천년숙적 일본의 과거죄악을 기어이 결산하려는 남조선민심에 대한 용납 못할 배신행위이다.

지금 남조선의 각계층은 《친일적페청산》의 구호밑에 반일항전에 과감히 떨쳐나서고있다. 여기에는 지난 보수집권시기 매국역적들이 남겨놓은 친일적페의 오물을 청산하고 파렴치한 일본반동들에게서 과거범죄의 대가를 천백배로 받아내고야말 남조선민심의 견결한 의지가 비껴있다.

그런데 남조선당국은 일본반동들에게 굴욕적인 태도를 취하며 관계개선을 구걸하고있는것이다. 실로 남조선인민들의 자존심에 칼질을 하고 초불민심의 정의로운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배신적망동이 아닐수 없다.

지금 아베패당은 《일본은 양보한것이 없다.》, 《남조선이 미일의 압박에 굴복한것》, 《양보없이 얻어낸 일본의 완전무결한 승리》 등으로 남조선의 비굴한 태도를 조롱하고 《약속을 제대로 지켜라.》, 《제대로 된 연장이 중요하다.》, 《대화에는 응해도 타협이란 없을것》 등으로 호통치며 더욱 오만방자하게 놀아대고있다.

이처럼 파렴치하고 간특한 섬나라족속들에게 관계개선을 구걸하며 타협과 흥정에 매달리는 남조선당국의 비굴한 처사가 참으로 가소롭기만 하다. 남조선당국의 굴욕적처사는 일본반동들의 오만성과 파렴치성을 더욱 부추길뿐이다.

민족자주의 대통로에는 선뜻 발을 내디디기 저어하는 남조선당국이 친미사대, 동족대결의 길에는 서슴없이 맨발벗고 나서고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번 계기를 통하여 남조선당국은 미국상전의 승인없이는 그 무엇도 스스로 결정할수 없는 식민지주구의 비참한 처지를 다시금 여실히 드러내보였다.

이번에 갖은 위협공갈을 일삼으며 남조선당국에 《협정파기결정취소》를 끈질기게 강박한 미국의 후안무치한 행위는 남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노예로, 침략적목적실현의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상전의 날강도적본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남조선당국이 민심을 한사코 외면하고 상전의 꼭두각시노릇을 자청한것은 친미사대, 외세굴종이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이 아닐수 없다.

재침열에 들뜬 일본반동들에게 군사정보를 계속 넘겨주며 반공화국대결의 길잡이노릇을 하고 미국주도의 침략적인 《3각군사동맹》구축책동에 계속 동조해나서려는 남조선당국의 비렬한 망동은 반공화국대결의식의 뚜렷한 발로로서 절대로 용납될수 없다.

지금 남조선당국과 여당은 저들의 반민족적, 굴욕적처사를 두고 이른바 《외교승리》로 자화자찬하고있다.

친미사대, 외세의존의 늪에 빠지면 이렇듯 수치도 망신도 모르는 가련한 존재가 되고만다.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해치고 남조선민심을 배신한 추악한 망동은 그 어떤 궤변으로도 결코 정당화될수 없다.

지금 남조선 각계층이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 《잊을수 없는 치욕적인 날》, 《초불민심을 졸지에 전세계적인 비웃음거리로 만든 폭거》, 《<한>반도의 평화를 파괴하는 행위》, 《<지소미아>를 즉시 종료하여야 한다.》 등으로 격한 분노를 터뜨리고있는것은 너무나도 응당하다.

과거범죄에 대해 반성조차 하지 않는 간악한 일본반동들과는 추호의 타협이나 양보도 있을수 없다.

남조선당국은 민심을 거스르다가 파멸에 처한 박근혜역적패당의 비참한 말로를 새겨보는것이 좋을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리태성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 담화


우리가 미국에 제시한 년말시한부가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의 선제적인 조치들에 화답하여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고 그 무슨 《지속적이며 실질적인 대화》타령을 늘어놓으면서 저들에게 필요한 시간벌이에 매여달리고있다.


미국이 주장하는 《지속적이며 실질적인 대화》란 본질에 있어서 우리를 대화탁에 묶어놓고 국내정치정세와 선거에 유리하게 써먹기 위하여 고안해낸 어리석은 잔꾀에 불과하다.


미국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앵무새처럼 외워대는 대화타령을 우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으며 이제 더는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모든것을 투명성있게 공개적으로 진행하여온것처럼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구태여 숨기려 하지 않기에 우리는 년말시한부가 다가온다는 점을 미국에 다시금 상기시키는바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최대의 인내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중대조치들을 깨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이제 남은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

  


주체108(2019)년 12월 3일

평 양 (끝)

Report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