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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온 수학 선생님이자 우리 반 담임인 그는 좀처럼 웃지 않는 서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교탁에 출석부를 던져놓고 교실을 한번 둘러보는 것만으로 웅성거리는 잡음을 멈추게 했다. 남태현. 작은 분필로 칠판에 쓴 글씨가 특이했다. 모음을 길게 늘려 쓰는 필체였다. 이름을 다 쓰고 마침표를 찍은 뒤 돌아선 그가 입을 열 때까지, 반의 아이들은 그 누구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과목은 수학이야. 그의 첫마디에 누군가 탄식했다. 왜, 수학 싫어해? 그는 소리를 낸 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요. 대답하는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는 듯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시선을 돌려 말했다.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안하는 게 문제지.


그 다음으로는 출석을 불렀다. 그의 눈은 출석부에 고정되어 있었다. 고개를 들어 대답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건성건성 이름을 불러내려가던 그의 목소리가 정적으로 인해 멎었다. 송민호. 없어? 그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 말에 반 아이들이 두리번거리다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3분단 맨 뒷자리에 비어있는 책상이 하나 있었다. 그는 별말 없이 다음 이름으로 넘어갔다. 시선이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름을 다 부른 뒤에는 임시반장을 정하자며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그냥 출석부에서 시선이 닿은 이름을 무작위로 부른 것 같았다. 이름이 불린 아이는 화들짝 놀라 조금 겁먹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임시반장 해. 권유가 아닌 명령이었다. 그 아이는 마지못해 네, 하고는 옆자리에 앉은 아이와 자기들끼리 속닥였다. 담임은 그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어떤 뒷담화가 돌아다녀도 개의치 않을 것 같은 무심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눈빛이 변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비어있는 책상을 보던 그의 눈빛을.


*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송민호에게 관심이 있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한때 그를 좋아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아니다. 그 애와 나는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지만 그 애는 어느 순간부터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그를 볼 때마다 두근거리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그라졌다. 그가 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 좋아하는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식어갔다.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간 바람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학교 밖에서 그 애를 마주치기 전까지는. 그 애는 늦은 밤 우리 집 담벼락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교복을 입지도 않았다. 우리 집 근처에 있었지만 나를 찾아온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한 번도 대화를 한 적이 없었으니까. 내 기억 속의 송민호는 대개는 웃는 얼굴이었는데, 그날 밤 마주친 얼굴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좋아하던 그 애가 맞는지 의심할 정도로. 하지만 먼저 내 이름을 부르는 말투는 꽤나 다정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 애가 내 이름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앤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정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를 좋아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추측하건대 그 애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생각들을 밀어두고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제일 궁금했던 것을.


"왜 학교 안 와?"

"재미없어서."


기대했던 대답이 너무 시시해서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

 

"담임이 시켰어? 나 만나면 설득하래?"

"아니. 그냥……."

"내가 보고 싶어서?"

"……."

"너나 열심히 다녀서 나중에 개근상 타. 나 본거 얘기하지 말고. 알지?"

 

붙잡을 새도 없이 어느새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에는 그 애가 남기고 간 담배꽁초만이 덩그러니 짓밟혀있었다. 나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빨개졌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투둑 흘러내렸다. 주저앉아 숨죽여 울다 집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송민호를 본 적은 없었다.

 

*

 

새 학기는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첫 수학시간에 대놓고 엎드려 자던 애가 남은 시간 내내 머리 위로 의자를 들고 있었던 것을 빼면. 그 뒤로는 아무도 수학시간에 졸거나 다른 짓을 하지 않았다. 송민호는 여전히 결석이었다. 담임은 알면서도 매일 빼놓지 않고 민호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 뒤에 따라오는 정적도 그대로였다. 시간이 지나자 새 학기 특유의 분위기는 점점 사라지고 지루한 날들이 이어졌다. 수학 숙제가 유난히 많아서 버겁다는 점을 빼면. 담임은 우리 같은 애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한 톨의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지만. 뒤에서는 알게 모르게 벌써 담임을 부르는 별명도 생겨났다. 존재. 존나 잘생겼는데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 동의했다.

 

"있잖아. 나 이상한 거 봤어."

 

나는 새로 사귄 친구 집에 놀러 와서 숙제를 했다. 수학 숙제였다. 친구 집에 와서 숙제를 하고 있자니 놀러 온 기분이 아니었다. 끙끙대며 공식을 대입해 문제를 풀고 있는데 친구가 느닷없이 그런 소리를 했다. 뭔데? 나는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담임이랑 송민호 같이 있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면서 문제에 집중하는 척했다. 언제? 내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으나 친구는 제대로 못 들은 건지 얘기를 이어나갔다. 며칠 전에. 우리 집 옆집에 송민호 살더라. 근데 담임이 거기까지 차 끌고 왔던데. 둘이 뭔 얘기하는데, 무서워서 멀리 숨어서 보다가 들어왔어. 이상하지 않냐? 걔랑 담임이랑……그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담임과 송민호. 두 개의 단어만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나……가야할 것 같아."

"벌써? 아직 숙제 한참 남았잖아."

"나 집에 일찍 가야하는데 깜빡 했어. 미안해."

"그럼 데려다줄게."

"아냐. 나 혼자 갈 수 있어. 괜찮아."

"너 이 동네 처음 왔으면서 어떻게,"

"나오지 마. 알겠지? 집에 가서 연락할게."

 

나는 서둘러 가방에 책을 챙겨 넣고 도망치듯 친구의 집을 빠져나왔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순간적인 충동이 나를 밀어붙였다. 혹시나 해서 2층의 불이 켜진 친구의 방을 올려다보았다. 나를 발견한 친구가 잘 가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나는 대충 손을 흔들어 준 뒤 조금 걸어서 골목길을 돌았다. 그리고 벽에 기대 천천히 열까지 센 뒤 다시 친구 집 쪽으로 돌아갔다. 날은 벌써 어둑해져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무작정 적당한 사각지대에 숨어서 기다렸다.

 

날이 추웠다. 바람이 불어서 쌀쌀했다. 손이 시렸고, 핸드폰에는 집에서 온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쌓여갔다. 그동안 몇 대의 차가 눈에 띄었지만 그냥 지나갈 뿐이었다. 쪼그리고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아파 일어서는데 또다시 차 한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그 차는 민호네 집 앞에 세워졌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조수석에서 내리는 실루엣이 익숙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얼굴은 내가 알던 다정하지만 더 이상 웃지 않는 얼굴이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담임이 집에 들어가려는 민호의 팔을 붙잡아 돌려세웠다. 민호는 뺨에 닿은 담임의 손을 금방 쳐냈다. 웃는 쪽은 담임이었다. 학교에선 한 번도 웃지 않던, 서늘하다 못해 싸늘함이 느껴졌던 얼굴이 민호 앞에선 유하게 풀어졌다. 나는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작은 소리라도 낼까봐 입을 틀어막은 채 둘을 지켜봤다. 둘이서 한참 얘기를 했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침내 둘이 집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정확히는, 민호가 먼저 들어간 뒤 시간차를 두고 담임이 들어갔다. 너무 긴장해서인지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집에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걸어가며 전화를 받았다. 나 집에 가고 있어. 금방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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