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용 식탁

4인용 식탁


잠시 애도를 위해 식탁 네 번째 의자에 앉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남자는 늦은 봄에 어렵사리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뉴멕시코 교외의 작은 동네에서 보냈다. 전화번호부를 펴면 수두룩하게 나오는 시시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큰 불만은 없었으며, 가까운 사람에게만은 특별한 별명으로 불렸다. 일은 적당히 지루했고 적당히 보람 있었다. 집에 돌아가면 기민한 눈을 가진 아내와 조금은 이상하지만 작은 가슴에 품은 사랑이 많은 딸아이, 그리고 아직 비어 있는 새 개집이 있었다. 부부는 겨울이 되어 아이의 생일이 다가오자 작고 활달한 성격의 어린 개를 한 마리 들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자의 가족은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생활을 영위했다. 계절마다 가장 좋은 과일을 골라 요리했고 이웃들 중에서는 가장 좋은 라디오를 가지고 있었다. 텔레비전 영화의 이상적인 결말에서 그리는 것처럼 완벽한 행복은 아니었지만 그런 건 누구라도 오 초 이상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이어서 큰 흠결이 되지는 않았다. 저녁 시간이 되면 남자는 4인용 식탁에서 항상 아래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왼손으로는 아내의 살집 없는 손을, 오른손에는 딸의 끈적한 손을 감싸 쥐고서 식전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지금도 그곳에 앉아 있다. 클린턴이 얕게 주름이 패이기 시작한 이마에 총알을 박아 넣기 전에 일부러 그 자리를 고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의혹, 격발, 침묵.) 되짚어 보았을 때 이 시적인 결말이 꽤 흡족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클린턴은 이 남자에 대한 시시콜콜한 사실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와는 정 반대로 남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이 그렇게 황망한 낯을 하고 있는 건 적잖이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첫번째 의자에 기대 앉은 클린턴은 별 고민 없이 그대로 말했다. 두 번째 의자에 엉거주춤 걸터 앉은 얼은 동의하지 않았다. 재미있다고. 짤막한 감상은 고장난 메아리처럼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그래. 넌 십 분 전까지만 해도 이 사람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지. 이름은 뭔지, 왜 만날 약속을 잡았는지 하는 것들 말야. 그런데 지금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은 것처럼 굴고 있잖아. 테이블의 나뭇결을 따라 점점 느리게 퍼지는 피웅덩이를 보던 눈이 위로 올라왔다. 겪을 수 있는 가장 거대한 공포를 마주한 사람은 이따금씩 놀랍도록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다. 당신이 총을 쐈어. 이 사람은 아무 것도… 이 사람은 우리한테 커피를 내올지 물어 봤을 뿐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그렇다고 해 두지. 일축하는 말에 얼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거짓말의 증거를 찾아내려는 사람처럼, 혹은 오래 전에 잃어버린 형제를 찾은 사람처럼, 혹은 더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된 사람처럼 클린턴의 얼굴을 뜯어 보았다. 클린턴이 땀을 닦느라 미끄러졌던 안경을 다시 치켜올리자 렌즈 아래쪽 모서리에 엷게 피가 번졌다. 얼의 어깨 부근에 붉은 얼룩이 생겼다. 잘못 복사된 사진 같았다. 어쨌든 일이 복잡하게 되었어. 원래 이 사람은 네가 치우기로 되어 있었거든. 이런 식의 병합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충분히 조율할 수 있는 범위지. 문 옆에는 뚜껑을 뜯지 않은 표백제 통이 둘 놓여 있었다. 클린턴은 얼이 문 방향을 보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톱을 쓸 줄 아나? 그 말에 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르지 못한 마루 이음매에 걸린 의자가 덜컥거렸다. 고개를 든 클린턴의 표정이 잠시 부드러워졌다. 그가 달래는 것처럼 말했다. 이봐. 우리는 정말 오랫동안 헤맸었지. 이게 닫힌 미로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수많은 문들이 있었고 그 중 어느 것이라도 열 수 있었지만, 얼, 그게 정말로 실재하는 가능성인지 확신할 수 있나? 무한히 늘어선 문들 중 뒤에 무엇이 있을지 한 번도 정확히 알았던 적이 없었잖아. 그렇게 골라 여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택인지, 명백한 시작과 끝이 없다면 이 모든 갈림길과 꺾는 길목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냔 말이지. 우린 자명한 사실 하나를 간과했어. 오류는 한 패러다임 안에서 재주를 넘는 변칙 개체가 될 수는 있지만, 시스템을 감싸는 어떤 대전제만큼은 거스를 수 없었던 거야. 클린턴이 테이블 위로 손을 뻗었다. 우리가 거치는 사건들은 진정 비가역적이고. 단 하나 남은 유리잔에 검지가 닿았다. 정말로 자유 의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잔의 물이 사선을 그리며 기울었다. 이미 차 있는 잔의 물을 쏟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잔이 넘어가면서 테이블 아래로 물이 흘렀다. 남자의 머리에서 흘러 고인 피와 미지근한 물이 섞여 무늬를 만들었다. 주먹이 테이블을 내리치면서 물이 튀었다. 클린턴은 거기에 맞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흐릿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내 동행인은 어디에 있어. 터진 적 없는 입안에서 흘린 적 없는 피 맛이 느껴졌다. 그래, 그는 문을 열 때 집을 생각하고 있더군. 나는 너의 동행인이 아니야. 하지만 난 얼 셰필드의 동행인 클린턴 스미스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고, 뒷처리는 얼 셰필드가 해. 유리잔은 호선을 그리며 구르다가 카페트 없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균열이 들렸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좌표가 될 집이, 시작과 끝이 없으면 그 사이의 것들은 어떤 이름을 붙이든 의미가 없어, 안 그런가. 손바닥을 위로 한 주먹이 속 깊은 구덩이처럼 열렸다. 이만 열쇠를 받아가야겠군. 이제 필요가 없을 테니까. 이가 갈리는 마찰음 사이로 소리가 샜다. 닳지 않는 열쇠의 요철이 얼의 닫힌 손금 안에서 뜨거워졌다. 그의 말은 선언과 저주 사이에 머물었다. 당신은 어디로도 가지 못할 거야. 클린턴은 눈물을 보고는 크게 웃었다. 벽 뒤에서 죽은 사람의 전화벨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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